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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가공 치즈를 타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 냉장고 한 구석은 늘 크라프트사의 주황색 가공치즈 한 박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식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언니와 나에게 어머니는 김 한 장에 밥 한 숟가락, 치즈 한 조각을 올려 입에 쏙 넣어주셨다. 별다른 재료 없이 식빵 위에 치즈 한 장 올려 전자레인지에 살짝 덥혀 먹는 ‘치즈 샌드위치’는 늘상 즐겨 먹던 간식이었다. 허기가 지면 관성처럼 냉장고를 열어 치즈 한 장을 꺼내 야금야금 베어먹곤 했던 어린 시절, 나에게 치즈라 함은 곧 ‘얄팍하고 네모난 주황색의 그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톰과 제리’ 만화영화를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제리가 좋아하는 저 치즈는 내가 먹는 치즈랑 모양이 완전 다르잖아? 구멍이 뽕뽕 뚫려져 있고 게다가 세모 모양이네!” 가공 치즈만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제리가 목숨 걸고 사수했던 그 구멍 뽕뽕 세모 치즈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과연 그렇게 생긴 치즈 맛은 어떨까?”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동아대백과사전 ‘ㅊ’권에 나오는 ‘치즈의 종류’ 사진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면서 침만 꼴깍 꼴깍 삼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급 치즈 권하는 사회
2009년, 이제는 대한민국에서도 톰과 제리에 나오는 바로 그 ‘구멍 뽕뽕 세모(에멘탈) 치즈’ 를 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4~5년 전 와인 열풍을 타고 ‘와인과 함께 먹으면 좋을 안줏거리’로 고급 치즈가 대거 수입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고급 치즈의 깊은 풍미에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와인 바에서 병아리 눈꼽 만큼 잘라놓은 치즈 몇 조각이 담긴 2만3천윈 짜리 치즈 플래터를 주문, 조금씩 아껴가며 맛보는 행위’보다 더 나아간 것 같지는 않다. 어쩌다가 고급 치즈 한 덩이를 선물로 받더라도 ‘요걸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나’ 치즈를 앞에 놓고 깊은 시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결국은 짝짓기가 관건
지난 주말, 다른 매체의 인터뷰 취재 차 오랜만에 뉴욕에 다녀왔다. 인터뷰 촬영 장소는 맨하튼에서도 고멧(gormet) 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유명한 그리니치 빌리지 구역의 한 레스토랑이었는데, 마침 취재원과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수십 년 역사를 가진 오래된 레스토랑과 카페, 식료품점이 즐비한 그 동네에서도 유난히 북적이는 상점이 하나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바로 전문 치즈 숍 ‘머레이스 치즈(www.murrayscheese.com)’였다. 규모는 홍대의 작은 카페 정도로 아담했지만, 이곳에서는 치즈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콘텐츠가 짱짱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곳의 디스플레이였다. 치즈와 찰떡궁합인 ‘치즈 친구들’을 곳곳에 배치해놓았기 때문에, 레시피 없이도 이 디스플레이에서 힌트를 얻어 멋진 나만의 치즈 플레터를 머릿속으로 구상해볼 수 있었다.

함께 곁들이면 맛&영양 업그레이드, 치즈의 친구들
건과일 쫄깃하고 상큼한 건과일은 어떤 치즈와도 잘 어울린다. 마트에 갔을 때 안주 코너에서 말린 무화과나 크랜베리, 살구를 구입해 두면 두고두고 고급스러운 치즈 플레이트를 만들 수 있다
견과류 치즈의 고소함을 표현할 때 서양인들은 ‘견과류스러운(nutty)’ 맛’라는 단어를 쓴다. 치즈와 견과류가 찰떡 궁합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너무 짜지 않은 아몬드, 땅콩, 호두 모두모두 대환영이다.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 짭쪼롬한 올리브 한 알과 고소한 치즈 한 조각, 생각만 해도 군침이 고인다. 접시에 치즈를 올리고 톡 쏘는 향이 살아있는 고급 올리브오일을 살살 뿌려준 다음, 올리브 몇 알과 견과류를 곁들여준다면 고급스러운 향취가 느껴지는 100점짜리 플래터다. 염소젖 혹은 양젖 치즈에 더 잘 어울리는 레서피다.
꿀 곁들일 재료가 이도저도 없다면 올리브 오일 뿌리 듯 치즈 위에 꿀을 뿌려보자. 그 위에 생후추를 갈아 뿌려주면 심플하면서도 색다른 플래터가 완성된다. 역시 염소젖 혹은 양젖 치즈에 더 잘어울린다.

디스플레이가 고민된다면?
사실 머레이스치즈에서 파는 치즈 도구만해도 소프트 치즈를 자를 때 쓰는 치즈 와이어부터, 치즈 칼, 치즈 도마, 치즈 강판, 치즈를 위한 전용 쿨러까지 그 종류가 수십 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도구 하나 없어도 맛있는 치즈를 맛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드 치즈라면 작게 큐브 모양으로 자르면 될 일이고, 소프트 치즈도 냉장고에서 바로 꺼내 꾸덕할 때 칼로 살살 자르면 모양을 상하지 않고 슬라이스할 수 있다.(유튜브에는 ‘치실로 소프트치즈 자르는 법’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나무 도마에 깨끗하게 씻은 예쁜 나뭇잎 몇 개 깔고, 그 위에 치즈를 올린 후 제철 꽃 몇 송이 곁들인다면 살림의 여왕 효재 선생님도 부럽지 않다.

단 이것 만은 꼭!
치즈는 서빙 온도가 정말 중요하다. 특히 소프트 치즈는 온도가 너무 높으면 금방 녹아버리고, 온노가 너무 낮으면 그 부드러운 질감을 제대로 살아나지 않으니, 실내 온도에 맞춰 내는 것이 관건이다. 고급 소프트 치즈의 생명은 입 속에서 보드랍게 녹아드는 그 감촉 아닌가.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 날씨에는 대접하기 1시간 전 냉장고에서 치즈를 꺼내두었다가 내는 것이 좋다. 실온에 오래 둬야 할 경우에는 얼음을 담은 볼 위에 접시를 올려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About the author 김정윤
3년간 리빙 잡지 『레몬트리』 에디터로 일하며 ‘취향 있는 여자’로 성장하다. 유학생과 결혼 후 도미, 현재는 ‘레스토랑 시티’ 필라델피아에서 석사 진학을 준비하며 미국 치즈의 매력에 푹 빠져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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